고대 역사와 기독교 신앙

by 마크 반즈 (Mark Ward)

여러분은 이제 곧 예루살렘 근처에 위치한 1세기 유대교 무덤인 "수의 무덤" (the Tomb of the Shroud) 에 들어갑니다. 이 무덤은 분명 예수의 무덤은 아니지만, 이 무덤을 탐험해 보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보고 경험했던 것이 무엇인지 풍성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아겔다마에 있는 수의 무덤 (the Tomb of the Shroud). 1세기 유대교 무덤으로 예수의 무덤과 매우 유사함.


예루살렘 성은 수의 무덤을 중심으로 성장과 몰락을 겪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이렇게 성장과 몰락을 겪는 동안, 이 무덤은 언덕 위에서 방해받지 않고 2,000년을 보냈습니다. 같은 언덕에 있는 다른 무덤들은 이미 약탈당했지만, 이 무덤만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무덤으로 떠나 봅시다. 이 무덤 안에서 여러분은 2,000년 전 역사를 만져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입구를 향하고 있는 무덤의 위쪽 방

무덤의 아래쪽 방에 위치한 매장용 벽감


고대 역사를 손으로 만져 보는 것이 기독교 신앙과 별개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신앙에서 역사는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기독교는 필연적으로 역사적인 종교입니다. 복음은 신학적 진리뿐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에 연결되어야만 좋은 소식일 수 있습니다.


존 업다이크는 예수의 부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이야기합니다.

은유, 유비 또는 초월성에 대한 회피로
하나님을 업신여기지 맙시다.
부활 사건을 비유로 만들지 말고,
과거 사람들을 속인 흔적으로 만들지 맙시다.
대신 그 문으로 들어갑시다.

1세기 무덤 속으로 들어갑시다. 큰 돌로 무덤을 막듯 그 무덤의 이미지를 여러분 머리 속에 넣으시기 바랍니다. 두들겨 맞은 예수의 몸이 매장된 그 슬픈 날을 생각할 때, 바로 이 실제 바위 안에 무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 문으로 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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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으로 들어가기

by 마크 반스 (Mark Ward)


수의 무덤 입구는 사실 무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언덕에 위치한 상류층 무덤 대부분에는 작은 신전처럼 보이는 상부 구조가 있습니다.


 

이 영상에서 크레이그 A. 에반스 (craig A.Evans) 는 어떻게 수의 무덤을 통해 복음서에 나타난 매장 관련 기록들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수의 무덤의 아래쪽 방. 예수의 무덤은 이와 매우 유사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예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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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함께 무덤에서

by 마크 반스 (Mark Ward)

견고한 바위로 만들어진 무덤도 예수를 가둘 만큼 강력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죄 역시 예수를 가둘 수 없습니다!

이 아겔다마의 무덤은 수 세기에 걸쳐 최근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거 한 시점에는 이 무덤들을이 숨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무덤은 상류층의 매장지에 위치하고 있었고, 상류층 사람들은 본인의 이름을 담아 기념물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아래 사진에 나타난 무덤을 직접 보고 만진 사람들은 예수의 생애와 직접 맞닿은 사람들입니다.


감람산에 위치한 베네 헤지르 무덤. 호화 기념물 무덤의 좋은 예.


바위 속 무덤

무덤을 파기 위해서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단단한 석회암을 아겔다마 무덤으로 만들기 위해 끌로 수없이 찍어낸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무덤을 파기 위해 긁어낸 석회암을 모두 밖으로 꺼내야 했을 겁니다. 이는 사람의 노동력이 동원됐다는 뜻이며, 노동력이 동원됐다는 것은 재정적인 비용을 부담했다는 의미입니다. 상류층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덤에 많은 돈을 지불했을 것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이나 수의 무덤의 소유주와 같이 부유한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 매장될 무덤에 관심을 가지고 큰 돈을 지불했습니다.


아랫층에 위치한 장례용 벽감 (움푹 패인 공간)


우리가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은 삼십은 적은 돈이 아닙니다. 예수를 배반하라고 유다에게 돈을 준 사람들은 돈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무력한 빌라도에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라고 강요하며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은 부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소위 산헤드린의 무덤이라 불리는 예루살렘 북쪽에 있었던 크고 현란한 무덤 단지를 묘사한 다양한 그림들.

우리가 화려한 기념물 무덤을 가진 부자 유대인 지도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만약 우리가 유대인 농민이고 우리의 친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라고 외치고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방의 남쪽 벽감에 놓여 있는 돌 문.

어찌보면 우리의 행동은 상관 없었을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예수를] 못 박아 죽였다” (행 2:23). 하지만 그토록 큰 죄를 지었음에도 그들의 상황은 절망적이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신약성경이 우리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를 그날 청중들에게도 똑같이 들려 주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행 2:38).

같은 설교에서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예수]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 2:24). 예수는 죽음에 붙잡혀 계실 수 없었습니다. 에수는 무겁고 강력한 바위로 만들어진 무덤으로도 가둘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용서하는 능력은 우리의 추악한 죄도 막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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